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여덟째 이야기
- 걸신 들린 멧돼지를 잡아라!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
이 사나이 그야말로 어쩌다 임금이 되었는데
임금이 되면 배가 부를 줄 알았는데
걸신 들린 듯 허기진 배는 항상 비어있는 듯했으니
뭔가 잡아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천생 멧돼지라.
한번은 멀리 타국의 여왕이 죽었다고 하여
조문을 하러 비행기 타고 날아간 멧돼지
그 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큰 나라였어서
온 세계 한다 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것다
멧돼지도 가니와 손잡고 상가집 가면서 룰루랄라 신이 났것다
아 근데 갑자기 배가 고픈 거라
걸신 들린 듯한 이 놈의 배는 시도 때도 안 가리니
결국 조문은 밥 먹느라 못하고
함께 간 판서 참판 승지들은 어쩔 줄 모르는데
그나마 가니가 있어서 반주는 못하고
입맛만 쩍쩍 다셨던 멧돼지
고국에서는 난리가 났것다
조문 갔다면서 조문도 못한 이유가 뭐냐
조문 거절 당한 것 아니냐
반대당의 거센 공격에
승지들이 나서서 차가 막혀 그랬다고
차가 막힌 게 아니라 기가 막힌 걸신 들린 멧돼지 야그 하나
또 한번은 태풍이 불어 나라가 난리인데
집으로 퇴근해서 술 마시던 멧돼지
임금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다음 날 수해 사고난 반지하방도 들르고
쭈그리고 앉아 아래를 보며 사진도 찍었것다
그 때문에 난리 난리가 났건만 그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서민 코스프레도 하려고 어느 작은 식당에 갔는데
살기 어려우니 제발 살려달라는 식당 주인의 말
들었는데 모르는 척하는지 못들었는지
그냥 아무 말 없이 차림표 앞으로 직행해서
뭘 먹을까만 생각했다는 걸신 들린 멧돼지 야그 둘
편전에 앉아 이것저것 집어 먹고 마시던 멧돼지
다급한 승지 목소리에 마시던 술을 얼른 감추고
무슨 일이냐 어서 들어와 차분히 아뢰라
승지 말이 멧돼지가 도성에 출몰하여 큰일이라나
고관대작의 집도 막 쳐들어가고
백성들 텃밭도 마구 짓밟아서 엉망진창을 만든단다
멧돼지라는 말에 좀 찜찜했지만 그래도 임금 아니냐
위엄을 잔뜩 갖추고 목소리를 착 깔고서
그래 그 많은 포졸들은 무엇하고 있다더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워낙 멧돼지가 많고
오래 굶주렸는지 그야말로 저돌적으로 날뛰어서
포졸들로는 중과부적인 줄 아뢰오.
허 중과부적이라. 너도 문자 좀 쓸 줄 아는구나
이런 말이 나오려는 걸 얼른 입을 닫은 멧돼지
그럼 의금부 검새들은 무얼하고 있다는 거냐
아직도 칼날이 무뎌지지 않았을 터
검새들을 동원해서 멧돼지를 몰살시키라고 하렷다
제법 권위를 갖춘 어명을 발동한 멧돼지
승지가 그 말을 듣고 얼른 달려 나갔는데
조금 있다 다시 들어와 한다는 말이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만 황송하고 빨리 아뢰어라
검새들도 요즘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멧돼지 사냥에는 동원되기 어렵다고
하긴 의금부 검새들은 반대당 영수도 잡아 넣어야 하고
조금 더 있으면 전 임금도 잡아 넣어야 하고
이 놈 저 놈 말 안 듣는 반대당 선량들도 잡아 넣어야 하고
오랑캐와 엮어서 큰 건 하나 만들어야 하는 터
그 모두를 멧돼지가 은밀히 내린 어명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리
그럼 누가 백성을 보호한단 말이더냐
백성이야 원래 그런 팔자라 쳐도
고관대작이라도 보호해주어야 할 거 아니냐
좋다 그럼 내가 직접 나서주마
멧돼지가 직접 멧돼지 사냥을 나가기로 했것다
이거야말로 동족상잔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오랜만에 갑옷 투구 갖춰 입고 말에 올라탔는데
그 동안 너무 안 입었는지 어째 어색하구나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비 어쩌구 탄인데
옆에 있는 내시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에라 모르겠다 비비탄이라고 하자 비비탄 좋다
아무리 멧돼지가 수없이 낙방은 했어도
그래도 결국 과거 급제하고 의금부 대장까지 했는데
비육지탄을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과거 급제 뒤에 술만 먹고 보낸 세월에
걸신 들린 듯 쳐먹기만 했으니
넓적다리 살이 찌는 것과 함께 그 말도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것다
어쨌든 멧돼지 사냥을 나가는 멧돼지
어째 말이 좀 거시기한데 사실인데 어쩌랴
호위무사들을 데리고 도성 여기저기를 다녀봐도
멧돼지는커녕 개새끼 한 마리 보기 어렵구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배가 고파 오는구나
뱃속의 걸신이 뭔가 또 달라고 하는 모양인데
할 수 없이 이 날은 포기하고 편전으로 돌아온 멧돼지
가니가 들어와 용상에 앉더니 한마디 하는구나
오빠 멧돼지 잡으러 갔었다면서 그래 잡았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멧돼지
오빠 그러지 말고 전문 포수로 멧돼지 사냥단을 만들어 봐
그래서 훈련도 시키고 오빠가 지휘하는 거야
전문 포수라, 멧돼지 사냥단이라
훈련도 시키고 내가 지휘도 한다
그것 참 괜찮은 생각이다
역시 가니는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
그런 거 보면 과거 급제 안 해도
머리 좋은 사람은 좋은 모양인데
가니의 제안에 따라 전문 포수들로 구성된
멧돼지 사냥단을 만들기로 했것다
전국방방곡곡에 방을 붙여서 모집을 하는데
방에는 이렇게 써붙였것다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멧돼지
멧돼지 사냥을 하러 가자
그러면서 멧돼지 잡는 자마다 마리 당 100만 냥
100명 선발해서 열흘 동안 훈련한다
이 방이 붙자마자 구름같이 몰려든 포수들
근데 께림칙한 게 어디선가 본 듯한 자들이 많고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멧돼지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이렷다
아무튼 활솜씨 총솜씨를 시험해서 100명을 선발하고
저기 청계천 어디쯤에서 훈련을 했는데
훈련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투구 쓰고 잘 안 들어가는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타 훈련 장소로 가려는데
굳이 가니가 함께 가자고 해서 그렇게 했것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좋구나!
청계천 물은 푸르고 빨래하는 아낙 산보 나온 행인도 많은데
이게 뭐냐 100명 뽑는다 했는데
웬 사람이 이리도 많으냐
옆에서 따라오는 승지에게 물어도 모르고
뒤에서 따라 걷는 내시에게 물어도 모른단다
멧돼지와 가니가 청계천 바로 앞에 까지 이르니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로 몰리는데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멧돼지 암수 한쌍
이제 입장을 하니 우리 모두 멧돼지를 잡읍시다
웬 가스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시작으로
촛불 든 개 돼지들이 몰려드는구나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다급하게 외치는 승지 내시의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순간에
말에서 떨어진 멧돼지
가니의 얼굴이 가물가물 우러러 보이는구나
포박되어 육조거리로 압송되었다고도 하고
호위무사 보호를 받으며 편전으로 도망갔다고도 하고
그냥 가을날 꿈이었다가 깨어났다고도 하는데
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여덟 번째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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