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열번째 이야기
- 천상천하 유저독존(天上天下 唯猪獨尊)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
이 사나이 정말로 어쩌다 임금이 되었는데
임금이 되더니 욕심이 계속 커져 가고
옆에서들 계속 추어주기만 하니
이 세상 천하를 자기 발밑에 두고 싶어졌더란다
천상천하에 오직 멧돼지만 존귀하게 있는 세상
그 세상을 위해 그야말로 저돌적으로 달렸다는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이 있것다
우주 간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는 말이라는데
본래 석가모니께서 태어나면서 외친 말이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원래는 나만 잘났다는 말은 아닌데
그렇게들 잘못 이해하고 쓰기는 하는 모양
멧돼지 이 인간이 쓰는 것은 물론 나 잘났다 인데
그러기 위해서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임금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동원했것다
언젠가 임금 되기 전에 스승께서 하신 말씀이
임금이 되면 일곱 년놈은 날려버려야
천상천하에 오로지 멧돼지만 존귀할 거라는데
년놈이란 말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까짓것 열 아니라 백 천인들 못하랴
년이든 놈이든 내 칼에 다 날려 버리리라
이리하여 멧돼지의 먹잇감 사냥이 시작되었으니
자 이제 그 야그를 해볼거나
첫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멧돼지 붕당의 대표였던 어린 놈
임금 선거 때부터 깐죽대고 어깃장을 놓아서
그때 어떻게 잘라버릴까 고민을 했었는데
이제 임금이 되었으니 손 좀 봐야겠다 마음먹고
마침 성 상납 받았다는 의혹이 안테나에 잡힌 거라
진짜인지 아닌지야 뭐 중요한 게 아니고
주변 인물들 디립다 조져서 기정사실화시키면 되는 법
둘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첫째 먹잇감 징계 받게 만들고 대표에서 물러나게 하고
내부 총질만 하는 놈이라는 프레임도 만들고
새로 대표를 뽑는 절차에 들어갔는데
공주 붕당 선량 대표였다는 인간이
공주 쫓아내는 데 일조해서 배신자 소리 들으면서도
백성들한테 인기가 좋아 대표 선거에 나온다네
붕당원만 투표권을 주라 해서 한방에 날려 버렸지
셋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둘째 먹잇감 날아간 뒤 제일 인기가 좋다던데
섬나라 떠받드는 체질이 멧돼지와 맞아 떨어지지만
배시시 웃는 게 왠지 멧돼지를 무시하는 것 같고
자리 하나 줬더니 지 멋대로 하는 거라
요것 땜시 스승께서 년놈이라 하셨던가
이런 먹잇감은 원래 구린 데가 많은 법
승지 보내 겁 주어서 지 발로 물러나게 했것다
넷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임금 선거 직전에 멧돼지 손 들어준 인간
멧돼지가 임금 되는 데
공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데
설사 있다고 한들 다음 임금 자리를 주겠는가
그걸 철석같이 믿으니 초딩이란 소리를 듣지
정무 승지가 나서서 임금과 신하가 대등하더냐
까불지 말라고 하니 꼬리를 내리더라
다섯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임금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반대 붕당 영수
임금 되자마자부터 집요하게 공격했건만
아직 잡아넣지 못했으니 오호 통재라!
하지만 이백번 넘게 뒤져 조졌으니
이제 머지 않아 철창 안에 넣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하다가 기분이 꿀꿀해서
책장 속에 숨겨둔 양주병을 꺼내 마시는데
여섯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반대 붕당 영수를 잡아넣으면
곧바로 잡아넣어야 할 직전 임금
이 인간 능력은 몰라도 인품은 뛰어나다고 다들 말하니
멧돼지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열불이 나더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만백성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구나
일곱째 먹잇감이 누구더냐
다섯째 여섯째에서 걸려서 술만 들이켜는데
승지 하나가 슬며시 다가와 은근하게 하는 말
이번에 뽑힌 대표가 땅 투기가 심해서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고 하는 거라
어쩌다 한 번 투기가 아니라 전문 투기범이라는데
말 잘 듣는다고 밀어줬더니 아니 찍어줬더니
이게 날려야 할 놈인 거라 골치 아프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졌는데 내시의 황급한 말이 들리더라
중전마마 듭시오 이게 뭐냐 가니가 왔다는 말
얼른 양주병을 숨겼으나 이미 늦은 듯
오빠 또 술이야 대낮부터 뭐하는 짓이야
반대 붕당에서 나를 특별 의금부로 잡아 넣겠다는데
이리 술타령이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끝장이야
혹시라도 스승이 말한 년놈이 가니를 일컫는 건가
아니겠지 아니겠지 한숨만 쉬는 멧돼지
가니한테 혼 나고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에서
가니가 돌아간 뒤 다시 양주병을 꺼내 들고
한 잔이 두 잔 되고 한 병이 다시 두 병 되고
어느새 온 세상이 뿌예지더니
천상천하 유저독존 천상천하 유저독존
꼬부라진 혀로 중얼대다가 중얼대다가
천상으로 붕 떠 올라서 아래를 내려보는 듯하더니
어느새 아무런 기억이 없어졌더라
눈을 뜨니 사방에 아무도 없네
게 아무도 없느냐 게 아무도 없느냐
열 번은 더 외치고 나니 비실비실 나타난 내시
다들 어디 갔단 말이더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바들바들 몸을 떠는 내시
그만 황송하고 빨리 아뢰렷다
전하가 독존하고 싶다 해서 모두 떠났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중전은 어디 갔느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중전마마는 의금부로
무엇이 의금부로? 스승님은 어디 가셨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역시 의금부로 가셨나이다
이제 소인도 가야 하옵니다
전하만이 오로지 존귀하게 계시옵소서
천상천하 유저독존 천상천하 유저독존
내시가 가면서 주문 외우듯 울려퍼지는 소리
텅빈 공간에 홀로 남은 멧돼지
그곳이 편전인지 의금부 독방인지 돼지우리인지
신하 궁녀가 도열한 임금이 진짜인지
홀로 남은 멧돼지가 진짜인지
몽롱한 상태로 천상천하에 홀로 존귀하게 남은
멧돼지의 일장춘몽 열째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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