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열한째 이야기
- 토사저팽(兎死猪烹)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멧돼지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었더란다
이 사나이 정말로 어쩌다 임금이 되었는데
지 나라보다 이웃에 있는 섬나라를 더 사랑했더라
어린 시절 애비 멧돼지 따라 섬나라 가서 산 경험도 있어
어려서부터 밥상머리에서 배운 게 섬나라 숭상
주위 사람들이 죄다 섬나라를 섬기는 이들
임금 되는 데 함께 해준 이들도 섬나라 섬기는 이들이라
그렇게 그리던 섬나라를 임금이 되어 방문했더라
때는 춘삼월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데
멧돼지 가니의 손을 잡고 찾아간 섬나라
어찌나 환대를 하는지 오므라이스도 먹고
보는 사람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데
저절로 섬나라 깃발 앞에 머리가 숙여지더라
그리하여 섬나라 사람들의 인심을 사고 왔건만
나라 팔아먹었다고 난리니 멧돼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낮술 한잔하고 나른한 봄날 따뜻한 햇살 쬐고 있는데
승지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달려 와서 한다는 소리가
전하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 났사옵니다
도대체 무슨 큰일이 났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나 하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만 황송하고 빨리 큰일이 무언지나 아뢰어라
전하가 섬나라 총리대신과 나눈 이야기가
섬나라 언론에서 크게 나왔다고 떠들썩합니다
섬나라 총리대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더라
멧돼지 술기운에 그냥 생각하기가 귀찮아져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다고 난리냐
요즘 하도 난리굿이 많아서 만성이 되기는 했다만
그래도 아무리 맷집이 좋은 멧돼지라도
요즘 하도 두들겨 맞으니 겁이 나기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듣기 좋은 말한 것밖에
큰일 날 말을 한 기억이 없으니 이를 어쩐다냐
가물가물한 그날의 회담을 이를 악물고 떠올려 보니
주위를 다 물리고 섬나라 총리대신과 독대한 멧돼지
총리대신이 갑자기 시종을 불러서 무엇을 가져오라 했는데
무엇인가 했더니 커다란 칼이렷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라고 한마디 하기도 전에
쫄지 마시오 이건 역사적 유물이니 보여주는 거요
총리대신이 내미는 칼의 칼집에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고 씌어 있더라
아하 사냥용 칼이구나 하고 그냥 웃어 넘기려는데
여기서 여우가 누군지 아시오 귀국의 왕비였던 사람이오
이건 또 무슨 말이냐 우리 왕비가 이 칼로 베어졌다니
우리가 귀국을 점령하려 할 때 장애물이 왕비였소
그래서 그 왕비를 이 칼로 베어버린 것이오
역사적으로 아주 소중한 유물이라 신사에 보관하고 있소
아니 남의 나라 왕비를 베어 놓고는 그 칼을 보관하다니
멧돼지의 생각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어 어리둥절한데
왜 우리가 임금이 아니라 중전을 베었는지 아시오
당시 중전이 실권자라서 그랬던 거요
지금도 귀국은 중전이 실권자라는 말이 있던데
아니 그런 비밀까지 어떻게 알았지
그래도 그런 말을 그냥 수긍할 수는 없어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천부당 만부당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우리나라의 폐하는 따로 계시오
나는 총리대신이란 말이오 총리대신
섬나라 임금이 따로 있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냥 기분 좋다가 쫄다가 하다 보니 그리 된 것
총리대신이 현안을 말하겠다면서 죽도라는 섬이 있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한마디 했고
멧돼지는 그저 듣고만 있었을 뿐
그것이 섬나라 언론에서 나왔던 모양
그 섬은 홀로섬이라고 해서
멧돼지 나라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영토
한때 섬나라 숭상하던 영의정이 섬나라에 가서
그 섬 가지고 다툴 거면 차라리 폭파하자고 했다던데
그때도 난리가 났었지 멧돼지 어릴 때라 잘 모르지만
멧돼지 생각으로는 그까짓 무인도 줘버려도 될 법한데
그런 말을 했다가는 공주처럼 쫓겨날 판이니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수밖에 무슨 수가 있것냐
멧돼지 나라 개 돼지 백성들이 가만 있지 않을 터이니
이제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구나
섬나라에서 지진 때문에 원전 사고가 크게 났었는데
그때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하고
그 때문에 섬나라 해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총리대신이 멍게를 꼭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라
그까짓 오염된 수산물이야 좀 먹는다고 대수인가
섬나라 은혜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멧돼지 생각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백성들이 개 돼지나 다름 없으니
반드시 이해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쳤것다
총리대신 다시 한번 껄껄껄 웃더니
우리나라 같았으면 귀하에게 할복을 하라고 했을 거요
이 무슨 말이냐 끔찍한 소리를 하네
농담한 것이오 우리나라가 아닌데 그럴 리가 있겠소
다만 위 두 가지가 안 되면 토사저팽은 명심하시오
토사구팽은 들어봤어도 토사저팽은 처음 듣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자니
토끼를 잡았으니 멧돼지를 잡는다는 말이오
이제까지 귀하가 우리 섬나라를 위해 애써준 것 감사하오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은 많이 남아있소
그때까지 귀하는 우리 섬나라를 위해 쓰일 데가 많소
하지만 이제 쓰일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면
우리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 아니오
그래서 오늘 이 칼을 보여준 것이오
그러면서 묘한 웃음을 웃던 섬나라 총리대신
그 날의 일이 섬나라 언론에 알려졌다니
다시 생각해보니 낮술이 확 깨는 느낌
이제 곧 대국 쌀나라에 가야 하는데
섬나라에서부터 살벌한 말만 듣고
쌀나라는 자꾸 섬나라와 친해지라 강요만 하고
사실 멧돼지가 섬나라를 사랑하지만
쌀나라 아니면 그렇게 서두를 일이 있었것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에라 모르겠다 낮술이나 좀더 하자
바깥이 웅성웅성하여 내시를 불러 무슨 일이냐 물으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를 연발하며 바들바들 떨더라
괜찮으니 어서 아뢰거라 네 죄를 묻지는 않을 것이니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개 돼지들이 대전 앞에 몰려와서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대국 쌀나라 가도 손해만 보고 돌아올 것이고
섬나라한테든 대국 쌀나라한테든 삶아질 것이니
그 전에 차라리 우리 백성들이 삶을 것이라고 하옵니다
멧돼지 너무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개구멍을 찾았다는데
그 뒤 멧돼지는 어찌 되었을까
끝내 붙잡혀서 백성들 손으로 삶아졌다는 말도 있고
섬나라로 도망가서 거기서 삶아졌다는 말도 있고
대국 쌀나라에 갔다가 못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멧돼지의 일장춘몽 열한째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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