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아홉째 이야기
- 멧돼지의 특명, 간첩을 잡아라!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에
갑자기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한때는 세작이라고 부드럽게 말하기도 했었는데
사라진 줄 알았던 간첩이 도성 안팎에 출몰했다니
그것도 떼지어서 간첩단이라고 부른단다
간첩이란 적국과 내통해서 적국을 이롭게 활동하는 자들인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간첩이 다시 떼로 나타났는지
그 야그를 슬슬 풀어가 보려 한다
간첩이라는 말이 떠도는 그 나라에는
멧돼지라는 임금과 가니라는 왕비가 있었것다
멧돼지는 의금부 대장을 하다 그야말로 어쩌다 임금이 된 자이고
가니는 멧돼지를 임금 만들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이를 왜 가니라고 불렀는가 하면
하도 간을 잘 봐서 간이 가니가 됐다고도 하고
딴 데로 잘 가서 어디 가니 했다가 가니가 됐다고도 하고
수도 없이 갈아치워서 또 가니 해서 가니가 됐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간첩이 떼로 나타났다고 나라에서 떠들어 싸니
사람들은 시큰둥하다가도 왠지 불안하고 의심이 들어
의심 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친구가 멧돼지를 안줏거리 삼아도 간첩 같고
동네 아낙들이 가니 허물로 수다를 떨어도 간첩 같아
신고 정신 하나는 수십 년간 몸에 밴 사람들이 많으니
신고해 말아 하다가 뭐 옛날처럼 거금을 주는 것도 아니니
에라 그냥 말자 하는 사람들이 시중에 허다하다는데
원래 멧돼지란 짐승이 욕심은 산 같아서
앞으로만 돌진하고 물러서는 일이 없는데
멧돼지라 불리는 이 인간도 그와 같아서
이 세상 모든 게 흑 아니면 백이고
내 욕심 채우는 데 도움 되면 내 편이오
아니면 모두 적이고 섬멸 대상이라
이 인간이 간첩 신고를 사명으로 알았던 세대
내 편 아니면 간첩이라 여기었더라
요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인기가 떨어지는 게 간첩짓 같은데
민생 파탄 났다고 떠들어 대는 놈들 속에 간첩이 있을 것 같고
화물차 모는 놈들 작업거부도 간첩이 사주했을 법하고
어디 그뿐이랴 외국 나갔다만 오면 흠을 잡는 년놈들
섬나라와 잘 지내려고 하는데 자꾸 훼방 놓는 년놈들
대국 쌀나라 지성으로 섬기는 것 극렬 반대하는 년놈들
가니의 허물을 까발리겠다고 물고 늘어지는 년놈들
스승과 미르뫼의 천기를 누설하려 애쓰는 년놈들
이 모두 간첩이 떼거지로 숨어 있어서 하는 짓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확신을 하게 된 멧돼지
의금부 대장 포도대장 정승 판서 승지 모두 불러서
간첩을 빨리 소탕하라는 특명을 내렸다는데
그런데 간첩을 어떻게 잡는다는 말인가
승지 하나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를 몇 차례 한 뒤
간첩은 뿔이 있다고 하옵니다 뿔 난 자를 잡아들여야 하옵니다
저런 한심한 놈이 승지를 하나 뿔 난 사람이 어디 있나
또 다른 승지가 나서서 간첩은 꼬리가 있다고 하옵니다
이런 멍청한 것들만 승지로 있나 꼬리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
버럭 소리를 지르자 승지들 머쓱해졌는데
속으로는 너보다 멍청하기야 하것냐 라고 말했을 터
내시가 나서서 아뢰옵기 황송하오나를 연발하여서
말해 보라고 하니 이 내시 한다는 말이
간첩은 냄새가 나옵니다 냄새를 맡아서 소탕해야 하옵니다
냄새를 맡아서 소탕한다는 말이 그런대로 신선하였더라
그래 간첩 냄새가 무슨 냄새란 말이더냐
간첩은 자고로 알코올 냄새 분 냄새 고약한 냄새가 나옵니다
간첩은 신분을 숨겨야 할 텐데 알코올 냄새는 무슨 말이냐
신분을 숨겨야 해서 불안한 마음이 앞서니 늘 알코올을 섭취하고
자기 신분을 가려야 하니 분칠을 덕지덕지해서 분 냄새가 나고
보통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녀서 고약한 냄새가 나옵니다
내시의 말을 들은 멧돼지 그럴 듯하다고 여기며 흐뭇해 하더니
당장 알코올 냄새 분 냄새 고약한 냄새가 나는 자를 잡아들이렷다
방송국에 침투한 간첩 잡으려고 보냈으나 허탕
반대 붕당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의금부 수사를 했으나
도무지 꼬리가 안 잡히니 짜증만 내고 있는데
고민하고 있는 멧돼지 앞에 가니가 나타나더니
오빠야 간첩 잡는 선수들을 풀어서 잡으라고 해야지
그게 도대체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고개만 갸우뚱 하는데
어휴 멍충아 내가 이런 것까지 다 알려 줘야 하냐
간작원 있잖아 포도청한테 간첩 수사권 빼앗긴 간작원
간작원이란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난다
간작원이 왜 간작원인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던데
의금부 검새 시절 간첩 사건은 간작원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으니
그때 간작원을 간첩 만드는 곳이라고 은밀히 말했었다
왜 간작원 생각을 진작 못했던가
간작원이 원래 간첩 잡는 데 선수지만
포도청에 간첩 수사권을 1년 뒤면 완전히 빼앗기는데
그러니 더욱 죽어라고 뛸 거라는 가니의 말씀
역시 가니는 항상 지혜로운 여편네 아니 멧돼지에게는 여신이라
간작원에게 하라고 하면 이거야말로 굶주린 사냥개 풀어놓는 격
옳다 바로 그거다 싶어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간작원이 준비를 하고 있었더란다
간작원이 간첩을 잘 잡지만 만들기도 해서 좀 거시기 하긴 한데
이 대목에서 가니의 한 말씀 간첩은 잡기도 하지만 미리 만들어서
아예 싹을 잘라야 하는 거야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
오빠는 그저 간작원의 수사권을 포도청에 준 것 다시 생각하자고만 해
특명을 받은 간작원이 음지에서 일하던 버릇도 내팽개치고
간작원이라고 등에 써붙이고 여기저기 압수수색에 들어갔것다
한 명 책상 뒤지는데 천 명의 포졸을 동원하고
결국 간첩단이란 이름으로 너댓 명 잡아 넣었는데
아 글씨 이 자들이 냄새가 날 듯하다가도 안 나는데
그래도 간첩만 만들면 그만이라고 했지만
진짜 간첩이 있어서 자꾸 자기를 괴롭힐 것 같은
그런 불안감에 빠진 멧돼지 다시 잡으라고 특명을 내렸것다
간첩을 잡아라 떼거지 간첩단을 잡아라
멧돼지 가니 스승을 조롱하고 지지율 떨어뜨리는 간첩을 잡아라
냄새 찾아 삼천리 뒤지고 뒤지고 뒤지고
여염집 들어가서 시궁창도 쑤셔 보고
관청 사찰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뒤집어 보고
아 그런데 이 냄새가 날 듯 날 듯 하다가도
잡았다 싶으면 사라지곤 하더라
하릴없이 냄새가 가장 심한 곳의 좌표를 찍어 포위망을 좁히라 했는데
특명을 수행하는 간작원 특별 수사대가
좌표를 찍어 전국 사방에서 좁혀 오는 중에
그 놈의 좌표가 글쎄 도성으로 향하는 것이라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는데 이건 또 뭐지
미르뫼 마을로 더욱더 좁혀지더니
멧돼지와 가니가 있는 편전으로 향하는 것 아닌가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좌표가 찍히더니
아뿔싸 편전 가까운 곳에 있는 스승의 방 아니더냐
이것도 간첩의 짓일 거라면서 방방 뜨는 멧돼지
새파랗게 질린 가니 스승에게 연통을 넣었는데
어느새 스승은 특별 수사대에 연행되고
순식간에 편전으로 뛰어든 사냥개들
알코올 냄새 분 냄새가 바로 여기서 지독하게 나는구나
멧돼지와 가니를 보고 머뭇거리는 사냥개들 뒤로
촛불 든 개 돼지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다
간첩이 바로 저 개 돼지들이구나
다 죽여라 모두 다 죽여 버려라
이렇게 소리 소리 외치다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고 하던데
멧돼지가 간첩이더냐 간첩이 멧돼지더냐
섬나라 간첩 쌀나라 간첩
간첩을 잡아라 잡아서 능지처참을 해라
개 돼지들의 외침에 멧돼지 소리는 묻혀 버리고
멧돼지 가니 스승은 그 뒤 어찌 됐을까
의금부 감옥에 갇혔다고도 하고
멀리 절해고도에 유배되었다고도 하고
아무튼 간첩을 만들어서 영원무궁 의금부 권력을 이어가려던 꿈이
모두 다 하룻밤 꿈이 되었다고 하던데
멧돼지의 일장춘몽, 그 아홉째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아주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란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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