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문> 2023년을 정치개혁의 해로 만듭시다
그동안 우리는 몇몇 사람을 제도권 정치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한국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누차 경험했습니다. 유능하고 실력있는 사람들이 대거 정치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지금의 규칙, 선거제도가 여전했기 때문입니다.
선거제도는 정치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고 정치인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열정과 실력을 갖춘 이들이 제대로 된 정책경쟁에 몰입하는 정치문화를 가로막았습니다. 그 빈자리를 상대방이 잘못하기만 기다리는 퇴행적 정치풍토가 메우고 있습니다.
만약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 길이 있다면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 자체에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을 뽑는 규칙을 바꿔야 국회가 바뀌고 정치가 바뀝니다. 그래야 국회에서 고금리, 고물가로 고통받는 우리 일상을 개선하는 묘안을, 경제·기후·남북관계 위기 등 지혜를 모아야 할 커다란 문제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동네민원을 챙기느라 쪽지예산이 오가는 구태를 끊어내고, 동네민원은 시·도의원 등 기초지방의원이 챙기는 지방자치 역량도 키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 12월 19일부터 20일까지 디지털타임스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주요 현안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 39.2%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정치개혁을 꼽았습니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은 현재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이미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2024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떤 선거제도로 총선을 치를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연초부터 선거제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국회는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논의 중입니다. 그러나 기득권 정치인들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로 개혁하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어떤 선거제도로 개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 가지 정도의 원칙을 지키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첫째, 승자독식이 아니라 표의 등가성(비례성)과 다양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30% 정당지지를 받으면 30%의 국회의석, 5% 정당지지를 받으면 5%의 국회의석이 각 정당에 배분돼야 합니다. 이렇게 거대양당 기득권 구조가 깨지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원내로 진출하면 정당은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개발과 의정활동을 게을리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특정정당에 의한 지역일당 지배체제를 깨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영남과 호남에서는 사실상 일당독재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깨려면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더라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해야 합니다.
셋째, 정당의 공천을 유권자들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개방형 명부’가 있습니다. 유권자들이 정당과 후보를 각각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는 정당의 공천권한을 유권자들이 직접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덴마크, 스웨덴 같은 유럽의 정치 선진국들이 채택 중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가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논의가 발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대통령 결선투표제 같은 사안도 이어서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정치권에서의 논의를 감시하고 주권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3월까지는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합의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려울 때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진전시켜 온 것은 우리 주권자들입니다. 권력이 남용되고 부패했을 때, 촛불로 그들을 심판하고 국가를 지킨 것도 우리 주권자들입니다. 이제는 주권자들의 힘으로 2023년을 정치개혁의 해로 만들어갑시다. 선거제도 개혁에 저항하는 정치세력과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반드시 쟁취해 냅시다.
2023년 1월
주권자전국회의 선거법개정 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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