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 들어서 갑자기 선거구제 변경이 주요 정치적 화제가 되었다. 일단 그것은 대통령이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현재의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꿀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고, 이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이 화답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야말로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난 21대 총선 이전부터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개별 의원 차원이더라도 선거제도 개정안이 다수 발의되어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개혁안 역시 여럿 제시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을 외면한 채 중대선거구로만 바꾸면 정치개혁이 이루어지는 듯 생각하면 안 되고, 무엇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지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짚어 봐야 한다.
먼저 지금의 선거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소선거구제는 흔히들 이야기하듯 승자 독식이라서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는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기 때문에 더 문제이다.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왜곡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표가 엄청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만 해도 절반에 가까운 43%가 사표가 되었다. 20대 총선에서는 무려 절반이 넘는 표가 사표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2등 이하의 표는 모두 의미 없는 표가 되니 사표가 엄청나게 나올 수밖에 없고, 이것이 민의를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왜곡의 결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결과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나 그것이 중대선거구가 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중선거구제는 이미 유신정권과 5공국화국 시절에 실시된 바 있다. 여야의 동반 당선이라는 귀결 역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작년 6월에 치러진 지방자치 동시선거에서 기초의회 의원 선거 중 시범실시된 지역에서 2-5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를 해보았지만 이것 역시 기존 양당이 복수공천을 함으로써 거의 독식을 하였다. 출발선이 다른 정당들이 선거구 바꾼다고 동일한 효과를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민의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니다. 복수공천 금지라는 단서조항을 붙인다면 모르지만, 기존 거대정당이 그런 조항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민의를 왜곡하지 않는 선거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거구 문제보다는 비례성의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 선거구 문제는 그것을 위한 장치로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보다는 아무래도 광역 대선거구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아직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이미 그러한 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리고 소수정당이나 정치신인들이 기존 거대정당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에 불리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벽을 없애야 하고, 그를 위한 기존 거대정당들의 획기적인 양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역정당 인정 등을 위한 정당법, 선거법의 전반적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갖기 마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의 정치 의식 수준이 낮으면 대표가 되는 정치인도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가 잘못 뽑았으니 괜히 불평불만을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민의가 왜곡되는 선거제도에서 뽑힌 대표를 두고 그를 뽑은 국민들 탓을 하면 안 된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행태를 두고 국민들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민의가 좀더 반영되도록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우리는 좀더 국민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민의가 왜곡되지 않으려면 단지 선거구를 넓히는 ‘선거구제 변경’이 아니라, 전반적인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 때이다.
'선거법 개정 특별위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론회 <선거법 개정, 무엇이 문제인가> 참가 토론 (0) | 2023.07.25 |
---|---|
선거제도, 개혁이 아닌 ‘개악’을 막아야 할 때가 되었다 (0) | 2023.04.25 |
<호소문> 2023년을 정치개혁의 해로 만듭시다 (0) | 202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