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특별위원회

선거제도, 개혁이 아닌 ‘개악’을 막아야 할 때가 되었다

주권자전국회의 2023. 4. 25. 17:45

지난 410일부터 13일까지 국회에서는 선거제도를 논의하기 위한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그러나 전원위원회를 지켜본 우리는 깊은 실망과 함께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반()개혁적인 행태를 보인 것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비례대표 폐지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었다. 현재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과도한 연봉과 보좌진, 잘못을 저질러도 징계도 받지 않는 특권)은 의원 숫자를 줄이면 더 커질 것이다. 지방선거 때면 공천권을 휘두르면서 지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특권도 더 커질 것이다.

 

줄여야 할 것은 의원정수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특권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은 없앨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의원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특권을 더 키우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OECD국가 평균적으로 보면, 인구 10만명당 1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숫자 300명은 너무 적은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과 보좌진 규모를 축소하면, 현재의 국회예산으로 국회의원 숫자를 더 늘릴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북유럽 국가의 국회의원들이 특권없이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라. 복지국가 스웨덴은 인구가 1천만명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 숫자는 349명에 달한다. 인구 대비로 보면, 우리보다 국회의원 정수가 5배 이상인 것이다. 이렇게 숫자는 많지만, 특권은 없다. 개인보좌진도 없이 열심히 의정활동을 한다. 이런 정치가 현재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만들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줄여야 할 것은 의원숫자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이다.

 

또한 국가의 일은 나 몰라라하고 자신의 재선만을 위해 지역구 행사와 경조사를 쫓아다니는 국회의원들이 비례대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공천개혁만 한다면, 비례대표중심의 선거제도가 지역구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비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는 더 유리한 제도이다.

 

지역구나 챙기는 국회의원으로 경제위기, 민생위기, 남북관계위기, 기후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비례대표는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례대표 공천이 문제라면 개방형 명부제도를 도입해서, 유권자들이 정당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도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될 일이다.

 

또한 국회의원 정수 축소, 비례대표 폐지를 주장한 국회의원들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거대양당은 당론도 정하지 못하고 전원위원회에 참석했다. 책임정치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니 김빠진 전원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협상을 한다고 해서 개혁이 되겠는가? 개악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개혁을 열망하는 양심적인 세력들도 이제는 긴장을 할 때가 되었다.

 

개혁의 시간이 지나고 개악의 움직임이 강해질 시기가 된 것이다.

이미 공직선거법상 선거구획정 법정시한인 410일이 지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양당이 밀실에서 협상을 진행한다고 한들, 개혁적인 방향으로 합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의 50% 보장)조차도 폐지하고, 과거의 병립형(지역구에서 과도한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게 비례대표까지 배분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식의 개악에 합의하거나, 전세계에 예가 없는 짜깁기식 선거제도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선거제도 개악저지를 위한 범국민적 운동일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활동해 온 양심적인 시민사회 세력과 정치인들에게 두 가지에 힘을 모을 필요가 있음을 호소한다.

 

첫째, 내년 총선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위성정당 방지장치만 두는 정도로 치르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미 개혁적인 방향으로 합의가 될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정치권에서의 밀실 논의는 비례성,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는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장치를 두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다. 지역구에서 50% 이상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의 경우에는 반드시 비례대표 정수의 일정비율 이상을 공천한다든지 하는 위성정당 방지방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위성정당 방지장치도 만들면 될 것이다.

그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나 개방형 명부 도입, 지역구-비례 동시출마제 도입 정도를 보완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과거의 병립형으로 후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개악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여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둘째, 이제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국회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맡길 것을 요구해야 한다. 더 이상 이해관계자인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도를 논의해서는 안 된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선거제도를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국회에서 추진하는 졸속적인 국민공론화가 아니라, 6개월이나 1년 정도 국민들이 선거제도에 대해 논의해서 개혁방안을 정리할 수 있는 추첨제 시민의회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직선거법에서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선거제도 개혁 범국민참여기구를 구성하도록 하고, 논의과정에 추첨제로 뽑힌 시민들이 핵심 논의주체로 참여하도록 하며, 전체 논의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금은 이 두가지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국회에서 비례성과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고, 거대양당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개악시도가 일어날 경우에는 범국민적 저지운동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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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 선거법개정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