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평화를 생각한다
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러다가 전쟁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다. 걱정하는 사람만 괜히 몸이 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우리는 70년 넘게 전쟁 상태에서 살아왔다. 그런데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하고 살았다. 군사독재 시절에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민주진보세력은 일부러 외면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전쟁에 대한 우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함께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것은 전쟁의 위험성이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정세의 변화, 대내적으로는 전쟁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존재가 이러한 위험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는 자들이 마치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는 듯한 무모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들 거의 모두가 죽을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만 죽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의 평화는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그뿐인가? 세계 평화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지금 인류는 자신을 수십 번 전멸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어쩌면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인류의 종말이 될지도 모른다.
설사 전쟁이 도중에 중단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다. 부모형제와 이웃이 흩어지고 목숨을 잃고 장애를 입는 상황이 올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고 가난하고 처참했던 70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비참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해도 좋다는 식으로 떠드는 자들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들일 것임에 틀림없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지난 70여 년의 고통을 딛고 간신히 진전시켜 온 민족화해가 완전히 붕괴되어서 다시는 회복하기 불가능할지도 모를 상황으로 가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그 동안 우리가 그나마 진전시켜 온 민주주의와 진보의 토대가 붕괴되고 우리 사회는 암흑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다. 6.25전쟁 직후와 그 뒤 수십 년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아니 동북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이다. 평화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싸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6월 항쟁이나 박근혜 탄핵 촛불항쟁 때 평화적인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5.18광주민중항쟁과 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5.18정신은 바로 평화를 지키고 얻은 정신인 것이다.
한때 평화는 소시민들이나 바라는 이상으로 치부되었다. 혁명전쟁이나 전민항쟁을 통한 체제변혁만이 바람직한 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거나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관념적으로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미 평화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상식적인 이야기일 텐데 미소 강대국을 중심으로 핵무기를 가진 국가들이 늘어나는 상태에서 인류 공멸의 원인이 될지도 모를 핵전쟁을 막는 일은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더욱이 1990년 이후 냉전의 한 축인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이 절대 강자가 되어 언제든지 미국 군산복합체와 네오콘의 탐욕이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위험 속에서 그것을 저지할 임무가 진보세력에게 주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정세는 또 한번 변화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 그에 따른 신냉전의 구도가 세계 정세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틈을 타서 과거 제국주의침략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은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는 헛된 꿈을 꾸면서 호시탐탐 한반도 재침략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정세를 잘못 읽고, 아니 의도적으로 자기 이득을 위해 왜곡하면서 침략세력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정권이 들어서 있다.
이들은 위태로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불장난도 마다하지 않을 인간들이다. 이들이 바로 전쟁 세력, 반평화세력임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평화를 위해 당장 시급한 일은 이러한 정권을 하루바삐 물러나게 해야 한다. 민주적이고 평화지향적인 정권이 들어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들을 물러나게 하고 무력화시키는 일을 통해 이들을 부추기는 외세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평화는 통일을 늦추고, 결국에는 통일이 아닌 분단을 공고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찍부터 진보세력은 평화 통일을 주장해 왔다. 그것은 군사독재가 말해 왔듯이 위장 전술인 것은 아니다. 가능하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는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충정에서 나온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전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땅에서 통일을 한다는 것도 바로 혁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분단이 갖고 있는 특수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전쟁이나 일방에 의한 흡수통일이 답이 되기는 어렵다. 그것은 민족화해를 통해 통일을 반대하는 대내외 세력의 방해를 극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다수의 민중이 통일을 염원하는 그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평화적인 방식 이외에는 없다. 평화 체제가 구축될 때 통일의 길은 열릴 것이다.
물론 평화 체제 구축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평화와 통일을 단계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평화가 마치 통일과는 다른, 분단의 고착화로 귀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평화의 절대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화와 적대적인 자들을 절대 다수 민중의 힘으로 포위하고 무력화시켜야 한다.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여러 길을 거칠 것이다.
진보의 과정은 진보를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무장 해제와 진보를 추구하는 세력의 힘의 확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평화적인 시위는 다수의 대중을 진보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유력한 수단이자 형식이다. 이제 평화는 목표로나 방식으로나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많은 피를 흘려 왔다. 앞으로도 쟁취한 토대를 기반으로 이 땅에 영구적인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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