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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윤석열

주권자전국회의 2024. 4. 1. 11:58

사잔=민플러스

 

이승만과 윤석열

 

 

4.10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국민적 열망을 실현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윤석열 정권이 왜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는 여기서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본질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최근의 두 사건을 언급하겠다. 물론 윤석열 정권의 본질을 이것만으로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 행태의 본질과 그것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사건이라서 거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모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문제와 겹쳐서 기시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하나가 대파 사건이다.

윤석열이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서 대파 한 단에 875원인 것을 보고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하여 뉴스거리가 되었다. 시중의 대파 값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놀랍지만 그거야 윤석열의 다른 모자람에 비하면 별 뉴스거리도 아니다. 윤석열 나름대로는 요즘 물가가 심상치 않으니 자기가 나서서 점검하겠다고 행차를 했는데, 정부기관은 물론 준공영이라고 할 농협 하나로마트까지 동원되어 바로 전날까지 1750원대였다는 대파 가격을 엄청나게 낮추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일자 사실은 대파 뿌리를 말한 것이라고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옹호까지 하고 나서는 여당 후보의 행태까지 겹치면서 대파 사건은 그야말로 윤석열 정권을 대파(大破)시킬 사건으로 일파만파 번져가고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제 윤석열은 거의 벌거숭이 임금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에 있는 자들이 민심과 차단되게 만들고, 아부만 하는 자들로 가득해서 뭐가 뭔지 분간을 못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물론 자업자득이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쓴소리 하는 사람은 내치고, ‘격노를 남발하니 어디 제대로 보고할 수나 있겠는가?

이승만 전 대통령은 물가를 챙기겠다고 매일 아침 두부, 콩나물 등을 당시 대통령 집무장소인 경무대로 들여보내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들어간 반찬거리들의 가격이 조작되었다. 그것을 보고 흡족해 했다고 하니 그 역시 벌거숭이 임금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웃지 못할 행태는 이후 1960년대 라디오 드라마 잘 돼 갑니다에서 풍자하는 내용이 나온다. 뭐든지 잘 된다고 하는 인간들만으로 주변에 가득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주 대사 이종섭 사건이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에 개입하여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호주 대사에 임명되어 돌연 출국하였다. 피의자 신분인 그를 갑자기 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도 의아하였고, 호주 대사는 차관급인데 전 국방부장관을 임명한 것도 이례적이었으며, 더욱이 이종섭 임명 당시 대사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갑자기 경질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신임장 원본도 없이 사본을 들고 부랴부랴 부임하는 모습이 범죄 피의자의 도주를 연상시켜서 호주 대사도주 대사가 되어 버렸다.

일단 여론이 너무 안 좋아서 귀국시켰고, 이종섭이 사의를 표하기는 했지만 하는 짓마다 자신과 가족, 지인들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법과 관행도 무시하는 것이 이승만과 너무도 닮았다. 이승만은 6.25전쟁 중에 거창양민학살사건, 국민방위군사건 등이 일어나서 당시 국방장관이던 신성모가 비판을 받자 그를 감싸다가 결국에는 해임하고 일본 대사로 도주시킨다. 물론 당시는 일본과 정식 수교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정식 대사로 볼 수는 없지만 일본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일을 하는 공직으로 대통령이 임명해서 보낸 것이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과 1951년에 정부가 강제징집한 국민방위군 수만 명이 보급을 받지 못해서 굶어 죽거나 얼어죽은 사건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명되지 못했는데, 이승만 정부는 1-2천 명으로 말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9만 명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미군 측에서 전쟁 기간 중 한국군 사망자 수를 14만 명이라고 한 것을 보면 국민방위군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알 수 있다. 국민방위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을 징집해서 그 중 수만 명이 무기도 식량도 의복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채 전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굶어서 얼어서 죽게 만든 것이다.

 

고 리영희 선생은 이 사건을 목격하였는데, 그는 증언을 통해 어떻게 인간을 이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하였다. 그는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형제와 오빠가, 아들이 죽어갔는지,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라고까지 하였다.

그만큼 처참한 사건인데 국민방위군 총사령관은 군인도 아닌데 별을 단 김윤근으로 신성모의 사위였다. 그러니 그 횡령한 것이 신성모에게, 그리고 이승만에게 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결국 이승만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하도록 한 엄청난 범죄자이거나, 아니면 그런 짓이 횡행해도 전혀 어쩌지 못하는 무능력자이다. 둘 다 가능성이 있는데, 어쨌든 그의 무책임과 무능에 의해 아까운 젊은이들이 죽어간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만 보아도 윤석열은 이승만과 너무도 닮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눈과 귀가 차단된 채 아부하는 자들만 주위에 있고, 그러고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혼자 잘난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도 온갖 범죄와 연루되면서 그것이 밝혀질까 두려워 법과 관행을 위반하면서까지 차단하는 짓을 하는 자들이다. 요즘 이승만 기념관을 열린송현광장에 세우겠다는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이야 원래 이승만과 비슷한 자들이고, 별 생각없이 그들의 뜻에 동조 내지는 묵인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의 이런 행태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와 정의가 살아있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승만 기념관 건립, 그것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곳 바로 앞에 세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그것은 바로 광주 금남로에 전두환 기념관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짓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 이승만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면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가? 이런 우려들을 말하면서 허무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무수한 피를 흘렸지만 도돌이표가 된 것은 아니다. 4.19민주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중항쟁 6.10민주항쟁, 박근혜탄핵촛불항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는 어느 정도 부당한 권력과 싸울 수 있는 민주적 권리를 제도화하였다. 그것을 통해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을 초기부터 궁지에 몰아 넣고 있다. 이제 4.10총선을 통해 정권을 심판하고, 이승만이라는 뿌리가 박혀 있는 수구반민족기득권세력을 뽑아내는 것으로 윤석열 정권 심판의 의미를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