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악 저지의 당위성과 현실성
물 위로 떠 오른 비례대표제 관련 쟁점
비례대표제에 대한 선거법이 현재처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것이냐, 20대 총선처럼 병립형으로 돌아갈 것이냐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다수 국민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원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국민의 힘은 병립형으로 회귀할 것을 당론으로 정했다. 20대 총선에서 했던 비례대표제 선출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에 비해 민주당은 내부에서 갑론을박하고 있는 상태이다. 11월 29일로 예정되어 있던 의총을 30일로 미뤄서 하고는 그 결과 반반 정도의 의견 분포라서 지금 결정할 수 없고 더 논의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인 12월 12일까지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결정하지 않고, 일단 선거구 획정만 한 뒤 비례대표제는 내년 2월에나 최종 결정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 동안 민주당이 벌써 국민의 힘과 병립형 회귀를 합의했다는 말이 돌았고, 국민의 힘은 그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해왔다.
병립형 회귀가 왜 개악인가?
위의 쟁점이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면 그 제도들이 유권자인 국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국민들은 딱 자기 수준만큼의 정치인을 대표로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선거제도가 국민들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할 때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은 그럴듯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선거제도가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가 사표이다. 병립형 소선거구제는 사표를 많이 만드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소선거구 제도에서는 지역구에서 1명만 되기 때문에 패배한 후보의 표는 모두 사표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 수십 표 차이도 그렇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그와 무관하게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사표에 있는 표심을 반영할 방법이 없다.
그런 점 때문에 고안된 것이 연동형이다.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와 의석의 차이를 계산해서 비례대표 선출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사표가 적기 때문에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데 불리하다. 사표가 많은 소수정당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동형이 거대정당에 불리한 것은 확실하다.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표성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지금의 국회의원은 재력 있고, 경력이 화려한 특정 직종의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 이들이 유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소선거구제에서는 소수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표가 되어 버린 표심을 반영하고, 대표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기 위해서 연동형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발 진전한 것이 바로 21대 국회에서 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준’이라고 하는 것은 지역구와 비례의 연동을 50%만 하기로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한꺼번에 바꾸는 것보다 점진적인 진전을 하자는 뜻이었다.
그런 일보 전진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것이 바로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퇴행이고 개악이 아니겠는가? 사표가 그렇게 많이 나와도 무시해 버리고, 재력이 있거나 권력에 끈이 닿은 사람들,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 아니면 국회에 형식적으로 몇 명 정도 자리를 주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병립형 회귀가 검찰독재를 저지하는 데 현실적인 것인가?
21대 총선에서 시행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단점이 있다. 바로 위성정당이다. 거대 정당이 지역구에만 출마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비례대표만 출마시키면 그 당은 법적으로 거대정당과 별개이기 때문에 많은 의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꼼수로 21대 총선에서 당시 미래한국당(현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까지 쓸어 갔었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힘은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면서 준연동형이 그대로 유지되면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정당이다. 그런데 민주당조차 이러한 협박과 유혹에 흔들리면서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럴 때 비례대표의석의 다수를 국민의 힘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논리이다.
위성정당은 일단 당사자인 거대정당이 안 만들면 된다. 그럼에도 만들겠다고 한다면 법으로 강제할 수 있도록 위성정당금지법을 제정하면 된다. 민주당에서 몇몇 의원이 그 법을 발의하였다. 지역구에 일정 수 이상 공천한 정당은 의무적으로 비례대표에도 공천하게 하면 된다. 지금 야당이 다수의석을 갖고 있으므로 법으로 강제할 법을 만들어서 통과시키면 된다.
물론 여당인 국민의 힘이 협조하지 않을 것이고, 요즘 윤석열 정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는,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 국민의 힘은 위성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은 못 만들게 되면 결국 다수당이 국민의 힘이 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의 처지에서는 있을 수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민심을 제대로 읽고 그에 부응한 정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 지금의 민심은 무엇인가? 반윤이다. 반윤을 위해서 국민의 힘과 합의해서 선거법을 퇴행시키겠다는 발상은 정말 민심을 잘못 읽는 것이다. 이야말로 자가당착이고 ‘야합’이라는 지탄을 국민으로부터 받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기간에서부터 다수정당이 진출할 수 있도록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저버린다고 하는 것은 성난 민심에 의해 외면당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헌까지 고쳐가면서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공천한 결과 처참한 패배를 당했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윤 단일대오를 위해 선거법 개악 저지해야 하고, 그것만이 총선 승리의 길이다!
지금 정세는 민주개혁진보세력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선 이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윤석열 정권의 공세에 민주개혁진보세력은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거듭된 실정과 뻔뻔스러움은 드디어 강서구청장선거를 계기로 반전이 되었고,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을 통해 그 반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윤석열은 그럼에도 반성 시늉만 내고는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하루에 4개씩이나 부결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제 쌍특검이 있고, 이태원참사특별법이 발의되어 있으며, 12월 19일 윤석열 징계 취소 재판이 진행될 예정에 있다. 이 재판에서 1심에 윤석열측은 패소하였고, 2심 재판은 윤석열의 고위공무원 자격 여부에 대해 어쨌든 재판부가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
연말연시에 있을 대형 정치적 사건들이 내년 4월 총선을 향해 모이는 국면이고, 이것은 반윤 단일대오에 매우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선거법 개악’이라는 ‘야합’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 지지자이든 우호적인 사람이든, 진보정당 지지자이든 반윤을 통해 이 나라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저지해야 한다.
민주개혁진보세력의 비례대표는 연합정치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비록 준연동형이지만 사표에 담긴 민심을 최대한 반영하고, 소수를 대표하는 정치세력도 의회에 다양하게 진출할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반윤연대를 강고히 하고 총선 이후에 윤석열 검찰독재를 종식시켜야 한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승리를 위한 현실적 전략이 아니고, 민주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을 완전히 분열시킬 것이고, 민주당 지지자들도 일대 혼란에 빠뜨릴 것이며, 상당수 관망하던 사람들을 정치허무주의에 빠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을 연장시키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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