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경 주권자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
참혹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직후, 승전국들이 중심이 되여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세계질서의 명분을 내세우며 다자적 기구인 유엔이 창립되었고, 전쟁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였던 통상과 금융 질서를 확립하고자 브레튼우드의 협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국제질서라고 자찬하는 미국과 서방의 평가와는 달리, 지난 70여 년의 세월은 상호적 합의를 내세운 형식적 모습과는 달리 강대국 중심으로 개별국가 특히 냉전체제를 내세운 미패권이 실제적 이익을 추구해오면서 지구 각처에서 여전히 전쟁과 위기가 지속되었고 남반구와 북반구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 형용모순적인 기간이기도 했다. 국제사회라는 것이 겉으로 내세운 이상주의의 가치적 명분과는 달리, 실리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정치로 불협화음을 이루는 변주의 장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특히 지난 90년대 초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비에트 붕괴 이후, 미국이 보인 일방적 패권의 전면화와 지나친 자국중심의 통상 및 경제운용에 따른 후유증으로 현재 엄청난 먹구름의 밀려오면서 온 세계가 매우 고통스런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일부의 전문가는 앞으로 전개될 국제적 상황은 전례가 없는 공공 및 민간의 과잉부채와 해결이 난망인 기후위기 등으로 인하여 양대의 세계전쟁을 치른 1914-1945 년간의 역사 경험과 유사하거나 더욱 혹독한 어려움이 예견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 단일지배체제가 확립된 이후 전개된 주요한 사건들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로 조작한 핑계를 내세워 시작한 이라크 전쟁과 뒤이어 9/11사태의 보복을 명분으로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의 침공, 그리고 미국이 배후임이 분명한 칼라혁명이란 이름의 아랍 민주화 등으로, 미국 브라운 대학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년 동안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민간을 포함하여 백만 명에 가까운 생명이 희생되었고,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이 초토화되는 과정에 전쟁수행 비용이 직간접으로 누적되어 물경 7-8조 달러가 투입되면서 그의 후유증으로 오롯이 현재의 세계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사하게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개입한 베트남 전쟁의 과다한 비용(달러의 남발)과 누적된 유로 달러의 추심 가능성에 대비한 태환정지 및 중동지역의 분쟁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면서 형성된 아랍의 자원민족주의(고유가)에 의해 발생한 스태그-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자 엄청난 고금리정책을 도입하면서, 미국의 뒷마당으로 평소 달러의 부채가 과중했던 남미 대부분 국가들이 파산의 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이를 중진국의 함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정당화 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남미의 퇴조와 혼란을 굳이 따지자면 미국이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인 셈이다.
전후 재건과정에서 소비에트의 확장을 막는 방패막이로 설정한 동맹국 독일과 일본이 급성장하여 미국의 관련 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하자 이를 상쇄하려고 미국이 우위에 있는 금융 산업과 첨단기술 등을 유리하게 적용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환율을 강제로 조정한 플라자 합의와, 한국의 IMF 위기와도 관련이 있듯이 개별국가의 주권을 무력화시키는 시장만능의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요하여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자 하였다.
다행히 독일은 자체의 산업혁신 기제를 강화하고 독자통화를 도입한 유럽연합과 이후 진행된 동유럽 통합을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해 갔으나, 일본은 부동산 등 거품 경제와 부패와 비리로 물들은 금권정치로 인하여 잃어버린 시대로 진입하면서 이류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졌다.
한편 미패권의 푸들로 불리는 영국은 산업경쟁력의 상실을 금융과 서비스로 대체하여 경제를 운용하여 왔으나,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불황의 위기에 빠지자 포퓰리즘을 동원한 탈유럽연합(Brexit)로 돌파하고자 했지만 결국 자기 발등을 찍은 자충수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일본과 영국은 대규모의 전쟁이라는 계기적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회생이 불가한 쇠락 과정의 국가군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것이 일본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연동하여 군사재무장과 선제공격론 등을 들고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한, 한미일 유사군사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활적 주제가 되고 있다. 이 모든 배경 역시 패권국인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합의된 다자적 국제기구인 유엔총회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이를 국무부의 산하기구로 간주해 오면서 유엔의 사무국이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부과된 재정분담금을 지연 내지 유보하여 빚더미에 올려놓기 일쑤이며, 190 여 회원국들의 역사적 전승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기구인 유네스코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과 다르다는 핑계로 탈퇴하였고, 기후협약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자국의 이익과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가입과 탈퇴를 자기집 드나들듯이 하는 모습을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중국을 자신의 체제로 편입시키고자 가입을 허용했던 WTO가 오히려 중국 공산당의 중심으로 힘찬 굴기를 지속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동시에 미국에 불리한 판결이 연이어 이루어지자, 이를 국가안보라는 핑계로 묵살하고 상소기구인 최종 심판제에 대한 인사 승인권을 행사하면서 조직을 무력화시키고자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미국은 오바마의 ‘아시아로 회귀정책’ 이래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일방적이며 조폭적인 관세정책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간 바이든의 탈공조화, ‘미국제일주의MAGA’에서 이름만 바꾼 ‘인플레감축법IRA’ 그리고 실제적인 전쟁을 선언한 ‘칩 및 과학법’ 등, 건전한 상식을 지니고 합의된 국제규범을 존중하는 국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패악적 성격의 정책들을 연이어 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방경제 체제와 중국시장에 의존하여온 한국 역시 주요한 산업들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으며 경제운용에도 심각한 어려움이 형성되고 있다. 아마도 한국의 장래에 지난 IMF 시기보다 더욱 혹독한 고통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제통상법에 정통한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의 상기 행위는 WTO의 규약뿐만 아니라 상호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한미FTA 협정에도 위배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국 자체가 근거도 없는 예외주의적 선민사상(시오니즘)과 자신이 정한 규칙을 거부하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마니교적 주술에 걸려있다 할 것이다.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자국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벌리는 현란한 다층다면적 정책의 시도와 도입에 대한 세계각국 및 관련 기구의 입장을 모아 살펴본다.
“세계 강대국들 중 현존하는 국제질서에 만족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유일한 글로벌 초강대국인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의제인 "더 나은 세상으로 되돌리기-Build Back Better"라는 명제를 전세계로 확대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프로그램 이름 자체가 반세기 이상 동안 미국이 주관해온 질서를 스스로 개선(파괴)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미국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력화시키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과 같은 협정에서 탈퇴함으로써, 자유무역에 대한 공약에서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굴기 뿐만 아니라 서구의 국제질서에서 추방된 러시아까지 미패권의 거대한 위협이 되어 눈앞에 닥치면서 워싱턴의 시각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 인도 전직 총리 Manmohan Singh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메논 교수의 포린 어페어즈 2022-08-05 일자 기고문”
“중국을 분리시킨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비용 상승과 더불어, 최근의 COVID-0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조기반의 연결된 인프라를 고려할 때 무의미합니다. 실제로 아시아태평양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중국이라는 국가는 아시아에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상호의존적인 시스템입니다….. 최소한 중국과 디커플링은 한국과 일본과 같은 기존의 미국 동맹국인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발국들이며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들인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의 발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범지역적 무역 및 투자 시스템을 교란시킬 위협으로 등장합니다. 이들 국가들에게, 디커플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경쟁적인 기술 및 생산 체인의 참여 여부에 대하여, 미중 간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칩 금지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 다자간 규칙과 제도를 형성하려는 그간의 미국 시도에서 ‘중국만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새로운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일 뿐입니다 - 동아시아포럼 편집진 2022-10-05 일자 논설”.
“Ngozi Okonjo-Iweala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75년 동안 무역다자주의의 핵심이었던 비차별의 규범(무역 파트너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요건)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천명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강요하는 분기적 양단(binary- 미중))간의 선택을 수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호주의 한 연구소 연설에서 많은 국가들이 두 블록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면 미국, 중국 및 기타 국가들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한 진전이 크게 손상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포린폴리시의 22-12-05 일자 칼럼에서”
“바이든의 주장처럼 ‘세계는 민주주의와 독재’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은 위험할 정도로 대결적입니다. 우크라이나 분쟁의 해결은 러시아의 입장을 배려하여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일방적 제재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유럽에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NATO는 유럽의 독자적인 안보전략에 반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 마크롱 대통령의 방미 당시 프랑스 외교단의 공식입장, 알자지라 22-12-05 일자 기사.”.
이렇듯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기존의 GATT체제를 대체하여 설립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대표 그리고 지난 수백여 년간 서방제국의 세계지배라는 축을 형성해온 대서양 양안의 핵심동맹인 프랑스조차 미국의 막가파식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제 국제적 상황과 전개에 대한 인식과 판단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다.
합의된 국제질서를 흔드는 국가가 과연 누구인가?
규범적 규칙을 어기는 수정주의 국가는 과연 누구인가?
(인도의 메논 교수는 명백히 미국이 수정주의 제1순위 국가라고 선언한다)
언제나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체제가 일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이 다자다극적 국제질서가 자리잡기까지 상당기간 동안 엄청난 혼란과 격동 더 나가 전쟁까지 예상되는 국면이다. 미국과 동맹이라는 쇠우리가 과연 한반도에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 이것이 한국의 미래를 후견하고 국가의 이익을 가져올 것인지, 반드시 우리의 관점과 이해로 철저히 분석하고 따져볼 일이다. 이에 해방직후 혼돈의 시절에 먼저 가신 여운형 선생의 가르침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민족의 자기주도적 역사가 국제사회의 흐름에 우선한다 – 혈농어수(血濃於水)!
이 글은 <민들레>에 게재된 바 있으며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