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추모시]
슬픔과 분노를 남은 우리에게 모두 주고 평안한 곳으로 가소서
노오란 은행나뭇잎이 거리를 어지럽히던
이 가을의 막바지에 그대들의 소식을 들었다
듣고 또 듣고 수 십 번 수 백 번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대들의 마지막 이야기
축제라고 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전해에도
수없이 그곳을 다녀간 이도 있고
난생 처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벗들의 손 잡고 찾아온 이도 있었다
누구나 즐거워하는 축제의 마당이라고 했다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솟아오르고 다시 꺼지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그 위에 다시 사람 사람들
전쟁터였다 빗발치는 포탄 아래
손을 놓지 않으려고 꼭 잡고 있다가
놓친 손을 휘저으며 서로 부르다 부르다
마침내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만 아득하던
마지막 남은 힘으로 외치는 소리
사람이 깔리고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
압사 사고가 날지도 몰라요 어서 와야 해요
손전화 저 너머로는 메아리만 울려 오고
배가 부풀어 오르고 숨을 쉴 수가 없다가
거적때기에 덮인 채 누워 있었던
저 남녘 오월의 땅이 아련히 스쳐 지나가고
그때서야 달려온 구급대원 의료진 경찰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대들은 생각했으리
나라는 어디로 갔는가
정부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우리가 권한을 준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고작 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대들 또래 2백명이 넘었던 학생들
그때도 수학여행을 간다고 설레던 마음이었는데
전국민이 보는 가운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가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아니 말단 해양경찰만 책임을 졌다
어떻게 그렇게도 똑같을까 서로 서로 발뺌만 하다가
사흘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사과한다는 한 마디
일선 경찰에게만 책임을 물으려는 저 뻔뻔함의 극치
이제는 누구나 안다 탐욕과 무관심이 참사를 낳는다는 것을
그것이 다시 거짓을 낳고 거짓은 또다른 비극을 낳고
탐욕과 거짓을 이기는 길은 용기와 진실이다
용기와 진실이 부족해서 8년 전 참사가 또 다시 일어났다.
이제 다시 노오란 리본을 달아야 하리
노오란 리본의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이게 해야 하리
먼저 가신 이들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고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만 하리
그것은 참사의 진정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
박봉에 과로에 시달리는 일선 경찰관들만 쥐어짜지 말고
책임회피로만 일관하는 진짜 책임자를 가려내는 것
용기와 진실의 마음으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단죄를 이루는 것
그 모든 일이 살아 있는 자의 몫이리니
이제 그대들이여 평안히 영면하시라
지옥 같던 아비규환도 다 잊으시고
이승의 모든 인연도 더 이상 생각지 마시고
그대들의 소식을 몰라 이 영안실 저 영안실 뛰어다니며
내 새끼야 내 새끼야 생때같은 내 새끼야
울부짖던 엄마 아빠의 슬픔과 분노도 이제 잊으시라
그것이 오히려 효도하는 길이리니
이제 슬픔과 분노는 남은 우리에게 모두 주고
평안한 곳으로 가시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는 곳으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여 어여 가소서!
202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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