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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이면 주권 침탈이고, 감청이면 주권 포기이다

주권자전국회의 2023. 4. 17. 15:14

도청이면 주권 침탈이고, 감청이면 주권 포기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대통령실을 도감청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들이 유출되어 전세계가 시끌벅적하다. 물론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도감청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도감청이란 말을 짚고 넘어가자.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도청이나 감청이나 모두 남의 말을 몰래 엿듣는 것이다. 그런데 도청과 감청은 의미에 차이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둘을 혼용하기도 한다.

  도청은 그야말로 도둑질하듯이 몰래 듣는 것이고, 감청은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몰래 들을 때 쓰는데, 물론 그 절차를 밟지 않은 불법 감청일 때도 쓰기는 한다. 보통 우리가 감청이라 함은 전자를 말하는데 제대로 삼권분립이 된 나라라면 감청의 법적 절차는 사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구속, 압수수색 등과 마찬가지로 감청도 사법부에 영장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 합법적인 감청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우리나라 대통령실을 도감청했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미국 중앙정보국이 우리나라 법원에 감청 승인을 요청했을 리는 없으니까 이것은 명백한 도청이다. 여러 가지 도청 기술을 써서 몰래 엿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국은 그렇지 않아도 도청 전과가 있다. 박정희 정권 때도 그랬고, 박근혜 정권 때도 그런 적이 있다. 그때마다 미국은 우물우물 하면서 넘겼고, 우리나라 정권은 항의 한번 제대로 못했다. 

  남의 나라 정부를 도청한다는 것은 그 나라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탈이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에 미국이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이고, 그에 대해 가해국인 미국은 피해국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문건 유출만 이야기하고, 도청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마치 자신들은 그래도 되는데 그것이 발각된 것만이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

  그보다 더 우스운 것은 피해국인 한국 정부가 미국의 도청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오히려 변호를 해주려고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도청 여부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아가서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도청문제에 대해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갖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악의적’이지 않고 ‘선의적’인 도청도 있나? 이쯤 되면 어느 나라 관료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마땅히 강력한 항의를 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공동조사를 요구해야 하고, 코앞에 닥친 대통령 방미를 연기해야 한다. 2013년 가을의 이른바 스노든 파문 때 독일의 메르켈 전 총리, 프랑스 올랑드 전 대통령, 브라질의 호세프 전 대통령 들은 당시 예정된 국빈 방문을 취소하면서까지 강력하게 대응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울어진 한미관계를 바로잡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 인사들은 그런 의지가 전혀 없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이고, 전세계 어디에서든 언제든 도청을 해왔다고 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자국의 패권을 위해서는 동맹이고 우방이고 가릴 것 없이, 도청을 자행하고 그 나라 정치에 개입한 것이 미국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뜻에 거스르는 타국의 정치지도자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했던 나라가 미국이다. 군사쿠데타, 요인 암살, 군사적 침략 등으로 상대국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어 왔던 것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해서 그것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제국주의 패권의 시대, 강대국간 냉전시대였던 20세기가 가고, 다극화 속에 각 나라의 주권이 존중되어 가는 21세기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미국은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자국의 패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신냉전구도로 국제관계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때 과거 미국의 강력함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하는 지식인 중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허무주의, 냉소주의는 평화로운 세계, 자주적인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버려야 한다. 일찍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강인함에 눌려서 친일로 돌아섰던 많은 이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옳은 것이 강하게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국제질서에서도 자리잡힐 때가 왔다.

  현재까지 분명히 밝혀진 사실은 미국이 우리 대통령실을 도청한 내용을 담은 문건이 유출되었고, 유출 사실을 미국 정부가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얼마나 진실인지 여부는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고 피의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당국의 조사보다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의 조사가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만 각 나라의 주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미국 당국과 공동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피해자인 대통령실이 나서서 미국을 변호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것이 정부 내 인사들과 결탁해서 행해진 일이 아닌지 의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도감청이란 말을 쓰는 것은 아닐까? 감청은 무엇인가? 감청에는 합법적 감청과 불법적 감청이 있는데, 대체로 도청과 상대적으로 쓰일 때는 합법적 감청을 이른다. 수사기관 등이 긴급 긴요한 일에 대해 감청을 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이때 사법부 등의 허가를 받고 몰래 엿듣는 것을 감청이라고 일컫는다. 

  사실 합법적 감청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검찰이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남발하고, 법원이 거의 발부해주는 현실에서는, 감청 역시 합법적 절차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권력의 입맛에 맞게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러면 국가와 국가 사이는 어떠한가? 원칙적으로 이것은 있을 수가 없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제3의 권력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원칙적으로 감청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감청했다면 도대체 누구의 허가를 받고 한 것인가? 단지 피해 당사국 정부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인정이 있었다고 여겨질 때 그것을 감청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합법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청을 인정한 자가 내부에 있다면 그것은 간첩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의 도청 여부에 대한 진상 규명과 아울러 우리 내부에서 내통한 자가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미국 정부에 모든 조사를 맡길 수 없듯이 우리 내부의 문제도 정부에 모든 조사를 맡길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조사는 마땅히 국회가 국정조사를 통해 해야 한다. 나아가서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도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 모두는 두 눈 부릅뜨고 이 과정을 지켜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문건 유출보다 도청의 진상 규명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마땅히 미국은 해당 국가의 국민들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주권 침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우리 내부에 그들이 도청할 수 있도록 협조하거나 인정한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주권 포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단죄되어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주권국가와 주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